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지워터 : 불타는 파도 (문단 편집) === 1막 3장[*1] === || 와일드 카드 경고 현란한 손놀림 고요하던 어둠이 세찬 파도처럼 술렁이기 시작했다. 상황은 빠르게 최악으로 치달았다. 창고 안은 어느새 톱니 갈고리단으로 우글거렸다. [[그레이브즈]]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총탄이 날아올 것 같은 불길함에 사로잡혀 몸을 숙였다. 그 순간 무시무시한 총소리가 들려왔고 내 앞에 있던 상자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정말로 작정하고 왔구나. 맘모스의 상아가 무더기로 쌓인 곳을 공중제비로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레이브즈를 향해 카드 세 장을 날리고는 카드가 제대로 맞았는지 확인도 하기 전에 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잠깐은 카드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몇 초만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텐데. 나를 찾아 헤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는 그레이브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성미 하며 황소고집은 여전하구만. 이 자식은 도무지 포기를 모른다. 그레이브즈가 으르렁거렸다. “이번엔 내빼지 못할 거다. 절대로.” 아, 저 고집불통. 하지만 그레이브즈, 넌 틀렸어. 난 이번에도 도망칠 거니까. 그가 꼭지가 돌아 달려들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그러니 대화로 풀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그때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데마시아]]산 고급 갑옷에 맞고 튕겨 나간 총알이 사방에 쏟아지듯 꽂히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창고를 뒤흔들었다. 간신히 총탄을 피하며 집히는 대로 카드를 날렸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갈고리단 놈들까지 상대해야 했다. 그레이브즈는 저주가 뒤섞인 협박을 뇌까리며 방아쇠를 당겨댔다. 잊어버릴 뻔했어. 덩치에 비해 참 날쌔다니까. 하지만 더 시급한 문제는 멍청한 자식 덕분에 톱니 갈고리단이 벌떼처럼 몰려든 거다. 우리는 완전히 포위됐고 중앙 출입구도 봉쇄됐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해. 그러나 의뢰를 완수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창고를 거의 한 바퀴 돌았는데도 그레이브즈는 성난 황소마냥 씩씩거리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창고는 이미 갈고리단 놈들이 점령해버렸지만 다른 놈들이 더 오고 있을 게 뻔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붉은빛을 뿜는 카드를 꺼내 중앙 출입구에 던졌다. 그러자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바닷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고 문가에서 쥐 떼가 찍찍거리며 황급히 흩어졌다. 갈고리단 놈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갈고리단 놈 하나가 손도끼를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놈의 무릎을 가볍게 걷어차고 다시 카드를 날려 다른 놈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놈들의 눈을 피해 부리나케 내달려 단검을 낚아챘다. 이 아수라장을 겪어내느라 갑절로 고생했으니 돈이라도 챙겨야겠다. 코앞에 출입문이 열려있는데도 갈고리단 놈들 때문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짠내가 섞인 악취가 훅 끼쳐왔다. 숨을 고르며 아직 소란이 미치지 않은 창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어둑한 상자들 틈으로 몸을 숨기고 놈들의 동태를 살폈다. 창고 안은 난장판이 되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손안의 카드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집중하려 호흡을 가다듬을라치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그레이브즈가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그의 총, 운명이 요동치며 사방을 헤집을 때마다 갈고리단 놈들이 바람 앞의 낙엽처럼 쓰러져나갔다. 부서진 상자의 잔해, 끙끙 앓으며 바닥에 뒹구는 해적 놈들, 쏟아져 나온 보물까지. 이것 참 덕분에 골치 아파졌다. 내 손안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레이브즈가 이 카드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증기 기관차마냥 연기를 뿜어대던 운명의 총구가 나를 향했다. 집중할 수 없다. 우선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거냐!” 천둥 같은 고함 소리가 창고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틈을 주지 않고 나를 쫓았다. 대체 언제 저렇게 영리해진 거람. 집중력은 점점 흐트러져갔다. 이대로 가다간 갈고리단 놈들에게 붙잡힐지도 모른다. 많은 놈들이 쓰러졌는데도 숫자는 줄지 않고 오히려 끝없이 불어나고 있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옷은 악취도 모자라 이젠 흠뻑 젖어버렸다. 자비를 모르는 놈들의 두목을 생각하니 타는 듯한 갈증이 일었다. 도무지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덫에 걸린 게 분명해.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쉬운 의뢰가 들어와서 가 보니 옛 동료가 기다리고 있다니…… 누군지 몰라도 그레이브즈보다 훨씬 똑똑한 놈이 꾸민 일이 틀림없다. 그렇다. 방심했던 거다. 내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지만 이미 나를 둘러싼 어깨들에게 한 대씩만 맞아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그때였다. 두 발 연속으로 산탄이 날아왔다. 엎어진 유리잔처럼 몸이 크게 휘청이며 뒤로 넘어갔다. 위험해. 나무 상자에서 백 년은 더 묵은 듯한 먼지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살이 날아와 썩은 나무판자에 박혔다. 한 뼘만 아래로 꽂혔다면 이마가 박살 났을지도 모른다. “그만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레이브즈의 녹슨 칼날같이 쉰 목소리가 들렸다. 불 속에 있는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졌음에도 얼음을 쥔 듯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어쩌면 이 자식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아까의 폭발에서 불꽃이 튀어 천장이 무서운 기세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창고는 얼마 안 가 무너질 터였다. 부두에서 봤던 검은 깃발이 마음속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부르짖으며 그레이브즈에게 호소했다. “우리 모두 사기당한 거라고!” “사기 전문가가 보기에는 그런가 보지?” 빈정대는 투였다. 그래도 설득해야만 했다. 창고 안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연기로 가득 찼다. “일단은 같이 빠져나가자. 복수는 그다음에 생각해. 제발.” 나는 콜록거리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레이브즈는 이를 갈았다. “네놈을 믿느니 성을 갈겠다.” 그래. 방법은 이것뿐이다.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것. 설득하려 하면 할수록 길길이 날뛸 터였다. 그레이브즈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 틈을 탔다. 간신히 몸을 판자 뒤에 숨겼다. 카드에 정신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창고 밖으로 이동한 순간, 심해에서부터 숨을 참고 수면에 다다른 것처럼 숨이 가빠왔다. 용암 같은 분노가 끓어 넘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카드 한 장만 남겨진 빈자리에 서서 잔뜩 약이 올라 헛된 총질이나 하고 있겠지. 활짝 열린 문을 유유히 빠져나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드 뭉텅이를 집어 던졌다. 손장난이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창고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구름마저 붉게 물들어 하늘이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레이브즈를 남겨두고 온 게 살짝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그 정도에 무너질 위인이 아니니 문제없다. 강한 놈이니까…… 게다가 부두에 불이 나면 빌지워터 전체가 발칵 뒤집힐 테니 도망치기엔 그편이 좋겠지. 하지만 어떤 길로 도망치면 좋을지 고민하던 내 등 뒤로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울렸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무너진 창고 벽 사이로 그레이브즈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산탄총을 난사하며 뒤쫓아오는 그의 두 눈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 했다. 다만 그 고집이 나를 오늘 밤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